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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괴상한그림자10
댓글 0건 조회 6회 작성일 26-05-22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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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 학술지 ‘문화재’ / 웹툰 ‘환수왕’還收王 / 국외박물관 한국실 지원 사업 / 찰스 랭 프리어 / 또 현해탄 건너는 고려 불상의 기구한 운명 / 미국내 韓독립운동 거점 ‘철거 위기’ 넘겼다 / ‘이순신 마지막’ 찾아냈다 / 일본 속 한국, 긴 인연의 증거들 / 대한제국공사관 6곳 중 3곳 안내쵸지도 없어/ ‘화조자수 10폭 병풍’ / 양혜규 브라질서 남미 최초 개인전 / 오페라로 재탄생한 ‘춘향전’ / 외국으로 흘러간 한국 미술품들 어떻게 수집·전시됐을까 / 우리 품에 돌아온 문화재 / 한국문화원의 약진 / 잊혀진 국외소재 문화재 / 지석 誌石 / 보물환수 대작전 / 국보 지정 / 파리 엑스포의 한국관 / 60년 만에 돌아온 칠성도 / 합법적 유출 문화재 현지박물관서 한국홍보에 활용 / 국외 문화재 관리 / 영국박물관(VA) 전시, 데이비드 보위 런던 V&A East / 10년간 국내 돌아온 문화재 784점 / 세계에 한국 미술을 심는 작가들 / 나한의 미소 / 문화재 안내판 / 김정희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 김 이사장이 꼽은 문화재 환수 사례 / 세계 속 우리 문화재- 고려 나전칠기 / 나전 대모 칠국화 넝쿨무늬 자합 / 나전흑칠삼층장 / 백자청화 초화문 각병 / 청자오리모양 주전자 / 분청사기 상감연화문 뿔잔 / 백자구름용무늬항아리 / 자수 종정도 병풍 / 양면 병풍 ‘백납도병풍'/ 우리 화조병풍 / 왕실의 여성과 잇꽃 / 조선 복온공주의 혼례복 / 활옷 / 태극기 / 염화미소 가섭상 / 지장보살 유희좌상 / 은제 도금 삼존불좌상 / 금동 비로자나불 입상 / 금동보살좌상 / 금동 천수 관음보살 좌상 / 자치통감강목 / 금동반가사유상 / 수월관음도 / 류성룡 ‘다이어리’ / 영친왕의 숨결이 서린 저택 / 조선 종 / 현존 유일 측우기 / 대동여지도 / 백자 동채 통형병 / 백자청화 김경온 묘지 , 이성립 묘지 / 가응도 / ‘책거리’ 병풍 / 흑칠나전 이층농 / 벨기에 박물관에 소장된 고려청자 / 시카고박람회를 사진으로 읽다 / 송광사 오불도 / 청자 상감 국화문 발 / 반화(盤花) / 주서강록간보 / 일영원구 / 파리의 이응노 화실 / 미국 호놀룰루 미술관 한국실 / 겸재 정선 화첩을 찾아온 사람들 / 조선왕실 문화재 되찾다 / 박병선 박사 / 우리 문화재 지킨 벽안의 두 이방인 / 美 보스턴 조선 불화 / 관음 삼십이 응신도 / 유성출가도 / 무진 진찬도 / 왕회도 / 묵죽도 / 채용신의 ‘관료 초상’ / 곽분양 행락도 / 해학반도도 / 덕혜옹주의 당의와 스란치마 / 강노姜㳣 초상 / 효명세자빈책봉 죽책 / 양봉요지 / 조선 후기 보군 갑옷 / 독서당계회도 / 고려미술관 / 한인비행가 양성소 / 이준 열사 기념관 / 최재형 옛집 / 보록 / 노부 / 대한제국 국새 / ‘어재연 장군 수帥자 기’旗 / 주미 대한제국 공사관 / 시카고 만국박람회 출품 유물 / 앙부일구 / 치종지남 / 직지심체 요절 / 까치호랑이’ 민화 / 십장생도’ 병풍 / ‘백자도’ 병풍 / 청자 양각 연판문 주자 / 청자 상감 동자문 매병 / 이수경 '번역된 도자기', 미국 시카고 미술관에 소장 / 청자 조각 동녀형 연적 / ‘청자 동화 모란당초문 완碗’ / 조선 16세기 나전함 / '조선시대 동물 그림전展'/ 콜롬비아에서 만나는 한국의 도자기 / 벨기에서 청자·병풍·외교문서 등 한국유물 특별전 //​국가유산 학술지 ‘문화재’ ‘문화재’ 100호 모습. /역 대 ‘문화재’ 모습. 사진 제공=문화재청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은 문화유산, 자연유산, 무형유산 등 국가유산(문화재) 전 분야를 아우르는 종합 학술지인 ‘문화재’(文化財) 통권 100호(56권 제2호)를 발간했다고 2023. 7.1 0일 밝혔다. 지난 1965년 첫 호를 펴낸 이후 58년 만이다. ​‘문화재’는 문화재청의 전신인 문화재관리국에서 정책 수립과 활용을 위한 학술 성과를 축적하고자 창간했으나, 1999년부터는 국립문화재연구원에서 발간하고 있다. 현재 고고·건축·미술·보존과학·자연·무형·역사 분야 연구 성과를 다룬다. 처음에는 매년 1호씩 발간하다가 2009년부터 연 4회 발간으로 바꿔 지금에 이르렀다. ​연구원에 따르면 그간 수록된 학술 연구 논문 수는 누적 1287편이며 저자는 1953명이다. 저자 중에서는 고(故) 정재훈 전 문화재관리국장이 12차례 논문을 게재하며 가장 많이 투고한 것으로 집계됐고, 노재현 우석대 조경학과 교수(9회)가 뒤를 이었다. 논문 분야별로는 고고 분야가 234편으로 가장 많았고 보존과학 198편, 무형유산 160편, 미술 159편, 건축 153편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연구원은 기존의 ‘문화재’ 체제를 ‘국가유산’ 체제로 변경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국가유산기본법’의 내년 5월 시행에 맞춰 학술지명도 내년 2024. 1월부터 변경할 예정이다. ‘국가유산’이나 ‘국가유산 연구’ 등의 이름이 유력하다. 연구원 관계자는 “앞으로도 국가유산 연구·보존의 가치와 유의미한 성과를 다양한 방법으로 확산하는 창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 최수문 서경기자​웹툰 ‘환수왕’還收王일제강점기로 돌아가 문화재 약탈 막을 수 있다면문화재청이 12일부터 네이버웹툰에 연재할 예정인 웹툰 '환수왕'의 메인 타이틀. 문화재청 제공시간여행 떠난 경매사의 고군분투 이야기“문화유산 소중함 전파… 국민관심 높이기” ​청​년 경매사 이준섭은 평소 별생각 없이 고미술품을 경매에 부쳤다. 도난 문화재는 아닌지, 한국 문화유산이 외국으로 팔려 나가는 건 아닌지 등에는 관심이 없었다. 높은 가격에 낙찰돼 수수료만 많이 남기면 그만이니까. 돈만 밝히던 그에게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 경매에 올릴 유물 한 점을 만지다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나게 된 것. 일제강점기로 돌아간 그는 문화재의 무분별한 국외 반출과 훼손을 낱낱이 목격한다. ​문화재청이 2023.12. 12일부터 매주 화요일 50부작으로 네이버웹툰에 연재한다고 11일 밝힌 웹툰 ‘환수왕’의 서사다. 과거로 돌아간 주인공(이준섭)이 위기에 처한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문화재청이 공개경쟁입찰로 선정한 이 웹툰 제작과 보급에는 약 6억 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청년 세대에게 문화유산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고 문화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환기하기 위한 사업이다. 문화재청은 2015년에도 문화유산을 소재로 한 웹툰 ‘물상객주’ (物商客主)를 네이버에 연재했다. ​이번 연재 기획자인 이기홍 문화재청 활용정책과 주무관은 “문화재를 활용하고 보존하는 일은 유물을 그저 보관하는 게 아니라 살아 숨쉬는 가치를 나누는 일이란 점을 일깨우려는 취지”라고 말했다. ‘환수왕’을 창작한 좌승훈 작가도 “문화유산은 단지 옛것 혹은 옛 보물일 뿐 아니라 한반도를 살아가는 우리를 '우리답게'만드는 요소라고 생각한다”며 “선조의 발자취가 연결돼 지금의 '우리'가 됐으며, 그것이 문화유산의 가치라는 점을 웹툰에 담아내고자 했다”고 말했다. - 김청환 한국일보 기자 ​국외박물관 한국실 지원 사업일러스트 - 박상훈 조선일보 기자국외박물관 속 작은 한국을 응원하다​​2023년 1월 기준으로 총 25개국 70개관에 운영 중인 국외박물관 한국실은 고대 문화부터 현대 작품에 이르는 한국 미술과 역사를 외국 현지에서 소개하는 장소로서 그 의미가 크다. 이러한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국외박물관 한국실은 소장품 부족, 공간 협소, 전담인력 부재 등의 문제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대다수의 국외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한국문화재는 다른 아시아 국가 유물에 비해 훨씬 적고 시대별·종류별 편차가 커 한국 문화 전반에 대한 균형 있는 접근이 어렵다. 이러한 소장품에 기반하여 운영되는 한국실 또한 자연히 규모가 협소하거나 입지가 취약한 경우가 많다. 한국 미술에 대한 전문성을 갖추고 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 전담 큐레이터도 부족하여, 중국이나 일본 미술을 전공한 인력이 한국실까지 관리해야 하는 실정이다. ​이러한 한계로 인해 국외박물관이 한국의 지원 없이 한국실을 효과적으로 자체 운영하고 전시나 공공행사 등 다양한 한국 관련 프로그램을 활발히 개최하기를 기대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90년대부터 국외박물관에 대한 국내 기관의 지원이 본격화되었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의 한국실 설치 지원을 시작으로 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박물관, 국외소재문화재재단 등 여러 국내 기관이 국외박물관 한국실 운영 및 소장 한국문화재 활용을 돕기 위해 앞장서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2009년부터 ;을 통해 한국실 환경 개선, 전시품 대여 등 국외박물관의 수요에 맞춘 다양한 지원을 이어 왔다. 2022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가 담당했던 한국실 지원 사업까지 이관받아, 한국실 관련 대표 창구로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중앙박물관이 지원한 국외박물관은 총 13개국 42개관으로, 그중에서 2023년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이 관리하고 있는 기관은 미국 시카고박물관, 영국박물관, 독일 훔볼트포럼 등 7개국 18개관이다. ​국외박물관 한국실 지원 사업국립중앙박물관은 이러한 ;의 일환으로 매년 신규 지원 대상관을 선정하여 사업비를 지원하고 관리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실을 이미 보유하고 있는 기관 외에도 한국실을 설치할 예정이거나 한국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는 국외박물관은 모두 참여할 수 있다. 지난해부터 국립중앙박물관은 이 사업을 중장기와 단기로 이원화하여 기관별·사업별 성격에 맞는 전략적 지원을 도모하고 있다. ​‘중장기 지원’은 한국실 개선 및 신설, 전담인력 고용, 특별전, 공공행사, 전시품 대여 등을 종합적으로 추진하는 최대 5년의 중장기 한국실 발전 계획을 대상으로 한다. ‘​단기 지원’은 최대 3년의 개별 사업을 각각 지원하는 것으로 보존처리, 교육 프로그램, 출판, 소장품 조사, 한국문화재 정보 온라인 공개 서비스 등 5개 분야에 초점을 맞춘다. 매년 진행되는 이 사업은 상반기에 공모를 통해 지원 신청을 받고 하반기에 심의를 거쳐 신규 지원 대상관을 선정한다. 심의 시에는 사업 계획의 타당성과 기관 적격성, 한국실 발전 가능성, 예상되는 기대 효과, 신청기관의 비용 분담률 등을 전반적으로 고려하고 있다.영국박물관(The British Museum) 한국실 전경미국 덴버박물관(Denver Art Museum) 한국실 전경립아시아예술박물관(National Museum of Asian Art) 한국실 전경​한국실 전시품 장기 대여국립중앙박물관의 ;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분야가 바로 한국실 상설전시 전시품 장기 대여이다. 상당수의 국외박물관이 한국문화재 소장품의 양적·질적 한계로 인한 한국실 운영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유물 대여를 요청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국외박물관 자체적으로도 구입 또는 수증을 통해 신규 유물 확보에 나서고는 있으나 단시간에 소장품의 완성도를 높이기는 쉽지 않다. 이에 따라 국립중앙박물관은 전시품 장기 대여를 통해 국외박물관 한국실 전시 콘텐츠를 보완하고 한국실 상설전시 교체나 테마전시 기획이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2023년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은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영국박물관, 뉴질랜드 오클랜드박물관, 태국 방콕국립박물관 한국실에 전시품 총 94건 95점을 장기 대여하고 있으며 미국 시카고박물관, 덴버박물관, 휴스턴박물관 등과도 전시품 대여를 위해 협의 중이다.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National Museum of Asian Art) 한국실 전경​실감콘텐츠관 조성이와 더불어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이 새롭게 추진하고 있는 것이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을 소재로 한 디지털 실감콘텐츠관을 외국 현지에 조성하는 사업이다. 이러한 실감형 전시는 전통적인 유물 중심 전시에서 벗어나 최신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한국의 대표 문화유산에 대한 공감각적인 체험을 제공하는 새로운 시도이다. 또한 나날이 증가하는 디지털 콘텐츠에 대한 전 세계적 수요에 부응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크다. 2022년에 11월에 설치한 태국 방콕국립박물관 한국실이 바로 이러한 실감콘텐츠 기반의 전시실로, 태국 현지에서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낸 바 있다. ​이처럼 국립중앙박물관은 ;을 통해 국외박물관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한국실 운영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고 이와 연계한 한국 문화 관련 사업을 활발히 추진할 수 있도록 다방면으로 지원하고 있다. 앞으로도 국립중앙박물관이 세계 각지의 국외박물관과 긴밀한 교류 협력을 이어 나가며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널리 알리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글. 심초롱 국립중앙박물관 전시과 학예연구사미국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National Museum of Asian Art) 한국실 전경​​목숨값으로 받은 고려청자 고려청자 양각 모란문 대접, 점토, 5x15.3 cm, 고려 12세기,미국 워싱턴 DC 스미소니언 국립 아시아 미술관 소장.1​907년 3월 15일, 조선에서 선교사이자 의사, 미국 외교관으로 활동한 호러스 알렌은 사업가 찰스 프리어에게 긴 편지를 보냈다. 알렌은 “1884년 한성(서울)에서 유혈 사태가 벌어진 뒤, 나는 국왕 다음으로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한 왕자의 생명을 구했다”고 썼다. 그 ‘왕자’는 갑신정변의 밤, 온몸에 칼을 맞은 명성황후의 조카 민영익이었다. 조선에 없던 외과 수술로 그를 살린 알렌에게 고종이 선물을 보냈다. 나전칠기와 비단에 곱게 모신 선물을 열어 본 알렌은 크게 실망했다. 금은보화 대신 ‘아주 작은 회녹색 대접’ 하나가 덩그러니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실은 그게 고려청자였다. 알렌은 고려청자가 값을 따질 수도 없는 보물인 줄을 그제야 비로소 알게 됐다면서 긴 설명을 덧붙였다. 고려의 도자 기술이 얼마나 선구적이었는지, 사기 그릇에 표주박을 쓰던 일본인들이 임진왜란 때 조선의 도공들을 왜 그렇게 잡아갔는지, 조선에서도 더는 만들 수 없는 고려청자를 구하기 위해 일본인들이 얼마나 혈안이 됐는지, 그래서 또 얼마나 많은 도굴꾼이 활개를 치는지 말이다. 알렌은 자기가 20년 동안 조선에 재직하면서 감식안을 키웠고, 그 결과 세계 최고의 고려청자 컬렉션 82점을 갖게 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만약 향후 10년 안에, 이 중 하나라도 가짜로 판명되면 전액 환불하겠다는 ‘10년 품질 보증’을 약속하며, 당시 아시아 미술 최대 컬렉터였던 프리어에게 소장품을 일괄 판매했다. 프리어가 구입한 알렌의 고려청자는 지금 워싱턴 DC의 국립 아시아 미술관에 놓여 있다. 밝은 조명 아래서 만인의 사랑을 받지만, 태평양을 건넌 뒤 나라를 영영 잃었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처량해 보인다. -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국립아시아미술관(NMAA)을 만든 찰스 랭 프리어(1854~1919)Charles Lang Freer​​시멘트 공장 소년에서 미술관을 만든 남자 제임스 휘슬러의 작품과 아시아 도자기를 비교하고 있는 찰스 랭 프리어. 사진: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미술관 제공국​립아시아미술관은 미국 워싱턴에 처음으로 생긴 미술관으로(1923년 설립), 올해 100주년을 맞았습니다. 이 미술관이 생기도록 소장품은 물론 건물까지 기증한 사람이 바로 찰스 랭 프리어입니다. 그의 이야기를 만나보겠습니다. ​1905년 12월 어느 날. 당시 미국의 대통령인 시어도어 루즈벨트는 찰스 랭 프리어로부터 편지를 받습니다. 미국의 수도라는 위상에 걸맞은 미술관을 워싱턴에 짓는 것을 돕고 싶으며, 이를 위해 미술품과 건물을 기증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5개월의 협상 끝에 프리어의 뜻은 받아들여졌습니다. 그가 이 무렵까지 수집한 미국과 아시아 미술품 2250점을 포함해 사망하기까지 모은 미술품들을 기증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프리어가 세상을 떠난 뒤인 1923년, 그가 남긴 9500여 점의 미술품을 토대로 아시아 미술 전문 기관인 ‘프리어 갤러리’가 워싱턴에 세워졌습니다. ​학교 대신 시멘트 공장 갔던 소년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미술관(NMAA) 제공​프리어는 어떤 인물이기에 이렇게 많은 아시아 미술품을 수집하고 그것을 정부에 기증한 것일까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그는 미국이 한창 개발되던 19세기 말, 기차 제조 사업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재력가였습니다. 그러나 타고난 부자가 아닌 자수성가한 인물이었습니다. ​1856년 미국 뉴욕 킹스턴 지역에서 6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그는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14세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중학교를 다 마치지 않았을 때 시멘트 공장에 취직해 돈을 벌었죠. 그러다 철도 사업을 하던 상사의 눈에 띄어 관련 업계에 종사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예술품 수집을 시작한 것은 1890년대 무렵. 이 때 미국의 경제 사정 악화로 스트레스를 받았던 프리어는 신경 쇠약을 앓게 됩니다. 1899년 업계에서 은퇴한 그는 여행을 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예술에 눈을 떴습니다. 제임스 휘슬러와의 만남 프리어가 수집한 도자기가 놓인 피콕룸의 모습. 이 방은 휘슬러가 디자인했다. 사진: NMAA 제공​현재 워싱턴 국립아시아미술관은 100주년을 맞아 프리어가 일생 동안 교류했던 사람들에 관한 전시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했던 것은 바로 미국 출신 화가 제임스 휘슬러와의 만남이었습니다. ​미술관의 미국 미술 담당 큐레이터 다이애나 그린월드는 “프리어의 소장품 중 1000여 점이 휘슬러의 작품이며, 이는 전 세계에서 가장 방대한 휘슬러 컬렉션”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휘슬러의 작품에 반한 프리어는 그가 있는 영국 런던을 직접 찾아 만나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시아 미술에 큰 관심을 가졌던 휘슬러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프리어의 휘슬러 사랑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바로 미술관에 영구 설치된 ‘피콕 룸’입니다. 피콕 룸은 1876년 영국 런던에서 만들어졌습니다. 당시 영국의 운수 사업가 프레데릭 리랜드의 의뢰로 만들어졌지만, 리랜드는 최종 디자인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고, 당초 약속했던 값의 절반만을 휘슬러에게 지불했습니다. 이후 1904년 경매에 나온 이 방을 프리어가 구매했고, 27개 상자에 해체에 담아 미국으로 옮겨왔고 이 때 엄청난 화제가 되었습니다. ​영국에서는 이 방에 청화백자를 놓았지만 프리어는 이것이 너무 뻔하다고 여겼다고 합니다. 대신 프리어는 휘슬러의 작품 속 안개가 낀 풍경처럼 어딘가 낡은 듯한 분위기를 좋아했고, 자신의 취향에 맞게 아시아 각 지역의 도자기들을 다시 배치했습니다. 여기에는 고려 청자도 포함되었고, 1908년 사진의 모습을 복원한 현장을 지금 워싱턴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예술로 유산을 남기다동양화를 감상하는 프리어. 사진: NMAA 제공​이 피콕 룸을 비롯한 수많은 유산을 프리어는 미국 정부에 남겼습니다. 그런데 이 기증이 그냥 이뤄진 것이 아니라 아주 자세한 조건을 달았다는 점이 또 다른 흥미로운 포인트입니다. 프리어는 기증 서약을 할 무렵 2000여 점의 미술품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사망한 후에는 이 기증품이 9000여 점으로 불어났습니다. ​자식이나 아내가 없었던 그는 자신이 가졌던 재산의 대부분을 미술관 운영비에 쓰도록 합니다. 건물은 물론 미리 작품과 어울릴 법한 모양을 구상하고 알맞은 건축가를 만나 의뢰해 두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유산이 아시아 미술을 연구하는 데 쓰이도록 했으며, 새롭게 세워질 미술관에 전문 큐레이터를 채용하는 것도 조건으로 삼았습니다. ​프리어가 기증한 건물 내에 소장품 외 다른 것을 전시하거나 외부로 대여하지 않는다는 조건도 지금까지 지켜지고 있습니다. 또 프리어 갤러리는 그가 기증한 것 외에 다른 기부를 받지 않고 있으며, 이사회의 승인을 거쳐 작품 구매를 통해 소장품을 늘리는 것만 가능합니다. 프리어가 자신의 컬렉션을 얼마나 소중히 여겼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죠. ​​특히 그는 자신이 사랑했던 휘슬러의 작품을 중심으로 예술의 맥락을 선보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 것 같다고 그린월드 큐레이터는 이야기했습니다. 삶에서 이룰 수 있는 여러 형태의 성취 가운데, 프리어는 예술로 자신의 유산을 남기길 원했고 그것을 얼마나 철저히 추구했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었습니다.미국 워싱턴의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미술관 프리어 갤러리 전경. 사진: NMAA 제공 ​결국 미국의 많은 시민들은 프리어의 기증을 통해 아시아의 수많은 명품 미술품을 감상하는 것은 물론 관련 자료 연구까지 의지만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도록 혜택을 보게 되었습니다. 예술에 대한 사랑이 여러 사람의 기쁨으로 번져 나가는 것을 직접 목격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 김민 동아일보 기자 ​또 현해탄 건너는 고려 불상의 기구한 운명​700년전 왜구가 약탈한 고려불상韓절도범 훔쳐오자 소유권 논란대법, 日소유 판결에 내년 반환역사와 법리의 관계 질문 던져 2​012년 어느 날, 한밤중에 일본 나가사키현 쓰시마섬의 작은 사찰 간논지(観音寺)에 도둑이 들었다. 그들이 노린 것은 평범한 물건이 아니었다. 빛바랜 금빛을 머금은 오래된 불상, 고려시대 금동관음보살좌상이었다. 한밤중 고즈넉한 사찰을 뒤흔든 이 절도 사건은 한일 양국을 관통하는 역사적 논쟁의 도화선이 되었다.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불상은 원래 한국 서산 부석사에 모셔져 있었지만, 고려 말기 왜구의 손에 일본으로 건너가 쓰시마섬 간논지에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불상은 조용히 사찰을 지키며 일본 땅에서 ‘새로운 주인’을 맞이한 듯 보였다. 절도범들은 한국에 밀반입한 불상을 은밀히 처분하려다 경찰에 적발되었고, 불상은 몰수됐다. 1330년경 이곳에서 처음 봉안된 불상. 왜구의 침탈로 빼앗겨 일본으로 건너간 지 700년 만의 귀환이었다. 2016년 서산 부석사는 “이 불상의 진정한 주인은 우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사건은 법정으로 넘어갔다. 핵심 쟁점은 두 가지였다. 첫째, 이 불상이 정말 고려시대 서산 부석사에 있던 것인가. 둘째, 만약 그렇다 해도 현재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는가. 1심 법원은 부석사의 손을 들어주었다. 불상은 왜구에 의해 약탈당한 것이 맞으며 원래 주인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판결이었다. 결정적 증거는 불상 안에서 발견된 발원문이었다. ‘고려 충숙왕 17년(1330년) 서주 부석사’라는 글자가 선명했다. 하지만 2심에서는 판결이 뒤집혔다. 법원은 현재의 부석사가 과거의 부석사와 ‘법적으로 동일한 존재’라는 것을 입증하지 못했다고 보았다. 종교 단체의 역사적 연속성을 법적으로 증명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려웠다. 게다가 법률상 ‘취득시효’가 적용되어 간논지가 불상의 소유권을 획득했다고 판단했다. 취득시효란 타인의 물건이라도 일정 기간 문제 없이 점유했다면 소유권이 넘어간 것으로 보는 법리다. 이 불상이 간논지에 봉안된 지 이미 수백 년이 지났기 때문에 법원은 간논지의 소유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2023년 10월, 대법원은 이 2심 판결을 그대로 확정하며 최종적으로 간논지의 소유권을 인정했다. 법정은 이 오래된 불상의 여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조계종은 반역사적 최악의 판례라며 유감을 표했다. 서산 부석사는 최근 한 가지 요청을 했다. “불상이 일본으로 돌아가기 전에, 최소한 100일간 불교 의식을 치를 시간을 달라.” 간논지는 반환 조건부로 이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만약 모든 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이 불상은 긴 여정 끝에 2025년 6월경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이 던진 질문들은 여전히 우리 앞에 남아 있다. “역사적 정의와 법적 논리는 언제나 함께 갈 수 있는가?” - 캐슬린 김 미국 뉴욕주 변호사​고려 불상 ‘100일간 송별식’ ​나​가사키현 쓰시마 섬의 사찰인 서 도난당해 2012년 국내 반입됐던 고려시대 금동관음보살좌상(이하 불상)이 일본 반환에 앞서 충남 서산 부석사에서 2025.1. 25일부터 100일간 공개된다. 그간 소유권을 주장하며 법정 공방을 벌였던 부석사 측이 “반환 전 불상을 모시고 100일간 법회를 열게 해달라”고 요청한 것을 간논지 측이 수락하면서다. 2025.1. 23일 부석사 측에 따르면 대전 국립문화유산연구원(옛 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센터 수장고에서 24일 오전 대전지검 관계자가 입회한 가운데 간논지 측에 불상이 인계된다. 이어 센터 1층에서 조계종이 주관하는 이운식이 열린다. 불상은 이날 오후 부석사 설법전으로 옮겨진다. 100일간 일반 공개되는 동안 불상이 안치될 특수강화유리 진열장도 22일 설치됐다. 부석사 주지 원우 스님은 지난 21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비록 환수엔 실패했지만 고향을 떠난지 약 650년(추정) 만에 불상을 원래 발원지인 부석사에 다시 모시게 돼 만감이 교차한다”고 말했다.높이 50.55㎝, 무게 38.6㎏의 불상은 2012년 10월 쓰시마 간논지에서 도난당했다. 한국인 절도단은 이를 포함해 쓰시마에서 훔친 2개 불상을 한국에서 유통하려다 검거됐다. 두 불상은 2013년 1월부터 항온·항습 기능을 갖춘 국립문화유산연구원 수장고에 보관됐다. 가이진신사(海神神社)에서 도난당한 동조여래입상은 2015년 7월 원 소장처로 돌아갔지만, 간논지 불상은 소유권 소송에 휘말리며 발이 묶였다. 불상 인도 청구 소송을 낸 부석사 측(원고)은 2017년 1심(대전지법)에선 승소 판결을 받았지만 2023년 2심(대전고법)에선 패했고 그해 3심에서 상고가 기각됐다. 앞서 1951년 발견된 복장물(腹藏物, 불상 안에 넣는 각종 물건)을 통해 이 불상이 1330년 고려국 32인에 의해 발원된 사실이 밝혀졌다. 부석사 측은 한국이 불상을 건네줬다는 기록이 없고 여러 정황상 서산에 왜구 침탈이 잦았던 1378년 무렵 약탈됐을 거라면서 소유권을 주장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간논지가 2012년 불상을 도난당하기 전까지 평온·공연하게 점유해 온 점 등을 근거로 민법상 취득시효(20년) 완성을 인정했다. 이후 반환절차를 놓고 줄다리기하던 양측은 올해 초 간논지 측이 “확실한 반환”을 전제로 ‘100일 대여’에 합의하면서 24일 불상 인계에 이르게 됐다. 이날 열리는 이운식에는 원우 스님 외에 수덕사 주지 도신 스님 등 조계종 관계자들과 간논지 주지 스님 등 일본 측 관계자도 참석한다. 이들은 부석사로 가서 불상 안치 과정까지 지켜볼 예정이다. 불상은 이튿날부터 5월5일 부처님오신날까지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반에 공개된다. 2013년부터 활동해온 서산부석사불상봉안위원회 이상근 대표는 “100일 법회 기간에 부석사 불상의 의미를 한·일이 공유하면서 불교문화유산의 보존과 활용 방안에 대해 두루 대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불상은 5월 중순쯤 일본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 강혜란 중앙일보 문화선임기자 고려 시대 금동관음보살좌상이 일본 반환을 앞두고 1330년 처음 봉안됐던 충남 서산 부석사에 24일 돌아온 가운데, 이 절 주지 원우 스님이 불상을 강화유리로 만든 장에 넣은 뒤 문을 잠그고 있다. ​일본이 약탈한 불상, 대법원이 ‘일본 소유권’ 결론 낸 까닭​한​국인 절도단이 일본에서 훔쳐 온 고려시대 불상의 소유권은 일본 측 사찰에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고려 때 약탈당한 문화재를 훔쳐 온 것이라 원주인인 국내 사찰도 소유권을 주장했지만, 대법원은 보관하던 일본 종교법인이 도둑 맞기 전까지 오랜 시간 점유해 민법상 소유권을 갖는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대한불교조계종 부석사(충남 서산시)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금동관음보살좌상'을 돌려달라며 제기한 유체동산인도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26일 확정했다. 해당 불상을 제작·봉안했던 고려시대 사찰 '서주(서산의 고려시대 지명) 부석사'와 서산 부석사가 동일한 권리주체라고 인정했지만, 오랜 기간 이 불상을 보유했던 일본 관음사에게 불상 소유권이 이미 넘어갔다고 판단했다.​한국인 절도단이 2012년 대마도에서 훔쳐서산 부석사 우리가 원래 소유자&quot소송대법원 일본 민법상 취득시효 20년 완성​한국인 문화재 절도단 일당 9명은 2012년 일본 대마도 관음사에 보관된 금동관음보살좌상을 훔쳤다. 일당은 불상을 국내에 밀반입해 22억 원에 처분하려다 경찰에 적발됐고, 불상은 정부가 몰수해 대전국립문화재연구소에 보관했다. 부석사는 과거 왜구가 고려를 침탈했을 때 약탈당한 문화재이기 때문에 원소유자인 부석사에 반환해야 한다며 2016년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1심에선 고려시대 서주 부석사와 현재의 서산 부석사를 같은 곳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가 쟁점이었다. 재판부는 불상에서 발견된 결연문의 내용과 고려 역사서 등을 바탕으로 두 사찰의 동일성을 인정했고, 불상이 일본에 의해 약탈당했던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를 서산 부석사에 반환하라고 판결했다. 정부는 그러나 서산 부석사를 고려시대 부석사의 후신(後身)으로 인정할 수 없다며 2017년 항소했다 ​항소심에선 변수가 생겼다. 일본 관음사가 한국 정부 측 보조참가인으로 재판에 참여해 조선시대 때 불상을 적법하게 물려받아 관음사 법인 설립(1953년) 이후 계속 점유해 취득 시효가 완성됐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일본 민법상 소유 의사를 갖고 20년간 평온·공연하게 타인의 물건을 점유한 자는 그 소유권을 취득할 수 있다. 한국 민법상 부동산 소유권 취득 시효 규정과 동일하다. 2심 재판부는 6년간 심리 끝에 1심 판단을 뒤집고 서주 부석사를 서산 부석사와 동일하다고 볼 수도 없고, 불상 소유권은 일본에게 넘어갔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사찰의 동일성에 대한 원심 판단은 잘못됐다고 봤지만, 불상의 소유권이 일본에게 넘어갔다는 결론은 유지했다. 대법원은 국제사법 부칙 등에 따라 이 사건의 취득 시효 완성 판단 기준으로 '일본 민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봤다. 준거법인 외국법의 적용을 쉽사리 배제하는 것은 국제사법 등 규범을 무의미하게 만들 수 있으므로 신중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일본 민법 규정이 우리 민법 규정과 거의 동일해 결과에 영향이 없다는 점도 근거로 들었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금동관음보살좌상에 대한 일본 관음사의 취득 시효가 1973년 1월 26일 완성됐고, 불상이 문화재에 해당하더라도 취득 시효 규정이 배제된다고 볼 수 없다며 부석사의 상고를 기각했다. 이어 이 사건 불상이 고려 시대에 왜구에 의해 약탈돼 불법 반출됐을 개연성이 있다는 사정만으로는 일본의 자주점유(소유할 의사가 있는 점유)라는 추정이 번복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현재 이 불상을 보관 중인 문화재청은 법무부 등의 반환 결정이 내려지면 이에 따를 것이라고 밝혔다. - 이정원 란국일보 기자​도난 고려불상을 한·일 화해 상징으로 ​2​012년 10월 한국인 절도단 4명이 일본 대마도에서 불상 두 점을 훔쳐서 국내로 들여왔다. 가이진(海神)신사의 동조여래입상과 간논지(觀音寺)의 금동관음보살좌상인데, 그해 12월 절도범들이 붙잡히면서 불상도 압류됐다. 8세기 통일신라 유물인 동조여래입상은 불법 유출 증거도, 소유권 주장자도 없어 일본에 반환됐다. 그러나 관음보살좌상은 충남 서산의 부석사가 소유권을 주장해 문제가 복잡해졌다. 원래 부석사에 있던 불상을 왜구가 훔쳐간 것이라며 2016년 국가를 상대로 불상 인도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최종심 누가 이겨도 한쪽은 상처불상이 맺어준 인연 귀하게 쓰기를부석사가 소유권을 주장하는 근거는 복장물(腹藏物·불상 내부에 봉안하는 경전·조성기·보화 등의 자료)에 포함된 결연문의 기록 ‘천력(天曆) 3년 고려 서주(瑞州) 부석사(浮石寺)’다. ‘천력 3년’은 1330년, 서주는 14세기 초부터 1413년 서산군으로 개칭하기 전까지 사용한 서산의 옛 지명이다. 1330년에 만든 불상을 고려말 서산 지역에 자주 출몰하던 왜구들이 약탈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 반면 간논지 측은 “사찰 설립자인 종관이 1525년 조선에 가서 1527년 돌아올 때 불상을 정식으로 양도 받아 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후 유통 경로를 알 수 없으나 이 불상은 1526년 간논지에 봉안됐다고 한다. ​법원의 판단은 엇갈렸다. 1심은 부석사의 손을 들어줬으나 2심은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불상을 제작한 부석사와 현재 서산 부석사 간의 동일성과 연속성을 인정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반면 간논지는 법 인격을 취득한 1953년부터 20년 이상 불상을 점유해 취득시효가 완성됐다고 판단했다. 부석사 측은 대법원에 상고하기로 했다. 도둑맞은 불상을 도로 훔쳐 왔으니 돌려주지 않아도 되는 걸까. 참 쉽지 않은 문제다. 상고심의 결과도 예단하기 어렵다. 정상적으로 불상을 반출한 경우라면 있어야 마땅한 이안문(移安文·불상을 옮기게 된 경위를 적은 글)이 복장물에 없다는 건 약탈의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하지만 구체적인 증거가 없다. 이 불상이 장물인지 약탈 문화재인지 이견이 분분한 이유다. ​결국 상고심 결과에 따라 누군가는 상처받는 게 불가피하다. 부석사는 발굴을 해서라도 옛 부석사와 현재 부석사가 같다는 것을 증명하겠다고 한다. 간논지도 수장고에 있던 불상이 아니라 500년이나 사찰에 모셔놓고 예경하던 불상을 도둑맞았으니 참으로 딱한 처지다. 송사로 승패를 가리지 않고 다른 방법을 찾을 수는 없을까. 불교에서는 “한 생각 돌이키면 그 자리가 바로 극락”이라고 한다. 역발상이 필요하다. 경위야 어찌 됐든 한국에서 만든 불상이 한국과 일본을 오간 것은 엄청난 인연 아닌가. 양측이 합의해 이 불상을 한·일 간 화해와 우의의 상징으로 만들면 어떨까. 부석사가 소유권을 갖는 대신 간논지에 영구임대하는 방법도 있다. 이를 통해 두 사찰이 상호교류하는 계기로 삼는다면 금상첨화 아닐까. ​벽에 부딪힌 한·일 간 문화재 전시 및 교류 활성화를 위해서도 원만한 해결이 필요한 상황이다. 불상 반환 논란 이후 일본에서는 전시나 학술조사를 위해 한국에 유물을 빌려주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가 역력하다고 한다. 꽤 오래 관계를 맺어온 개인, 사찰, 기관들조차 “상황은 이해하나 대여는 곤란하다”고 한다는 전언이다. 빌려준 유물의 무사 귀환을 보장하는 ‘압류면제법’도 없는 상태라 불안하다는 것이다. “이 사안을 한 가지 논리로만 보지 말고 융통성 있게 봤으면 좋겠다”는 한 문화재 전문가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다. – 서화동 한경 논설위원 2012년 절도범들이 일본 관음사에서 훔쳐 온 ‘부석사 금동관음보살좌상.’ 높이 50.5㎝, 무게 38.6㎏으로 1330년 고려시대 서주에서 만들어졌다. 현재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소 수장고에 보관돼 있다. 문화재청 제공​미국내 韓독립운동 거점 ‘철거 위기’ 넘겼다 미국 LA시 카탈리나 건물에 있는 흥사단의 옛 현지 본부건물 모습 / 흥사단 관계자들이 미국 LA시 카탈리나에 위치한 흥사단 옛 본부건물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보훈처LA 옛 흥사단 본부 건물 부동산업체가 철거 추진해흥사단 등이 사적지 지정 신청해 철거절차 보류시켜보훈처가 건물 매입해 새단장후 2025년 개관키로'LA 사적지 지정 →美 주·연방정부 문화유산 등재'추진​보훈처 매입해 보존키로일​제의 한반도 강점기에 미주 독립운동가들의 거점 역할을 했던 흥사단의 옛 로스엔젤레스(LA) 본부 건물을 우리 정부가 인수해 사적지 보존에 나선다. ​국가보훈처는 지난달 2023. 1. 31일(현지시간) 미국 LA의 흥사단 옛 본부 건물을 최종 매입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2일 밝혔다. 이번 매입은 해당 본부 건물의 철거를 막기 위한 차원이다. 보훈처가 해외에 있는 우리의 독립운동사적지를 매입해 보존을 추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보훈처는 해당 건물이 LA시의 사적지 등으로 지정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는 계획이다. ​보훈처는 해당 건물을 재단장해 오는 2025년 광복절에 개관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우선 건물 안정화 작업을 거친 뒤 연내에 건축물 정밀 실측 등을 실시하기로 했다. 이어서 활용 방안을 수립해 재단장 공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보훈처는 해당 건물이 향후 LA시 차원의 사적지로 지정되면 미국 주 정부 및 연방 정부 차원의 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도록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박민식 보훈처장은 흥사단 옛 본부 건물을 남가주 지역(LA 등을 포함한 캘리포니아주) 60만 재외동포뿐 아니라 현지인도 즐겨 찾는 살아있는 역사 문화·교육기관이자 소통의 장으로 특화하고, 미주지역 독립운동 사적지의 거점 기관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주도로 1913년 5월 13일 당시 한인 이주사회의 중심지였던 샌프란시스코에 민족운동단체인 흥사단을 창립했다. 흥사단은 창립한 해의 12월에 시카고 지부를 세우는 등 미국 전역으로 조직의 발판을 넓혔다. 흥사단은 2015년 본부를 샌프란시스코에서 LA로 이전했다. 이전 초기에는 LA 노스 피게로아 거리 106번지의 미국인 소유 2층 목조건물을 임차해 약 14년간 썼다. 1929년부터는 LA 카탈리나 거리에 있는 건물로 본부를 옮겼는데 이번에 보훈처가 매입한 건물이 바로 해당 건물이다. 흥사단원들은 성금을 모아 1932년 해당 건물의 소유권을 확보했다. 광복 이후 흥사단 본진이 서울로 거점을 옮기자 카날리나의 기존 단소 건물은 미국 내 항인 교육 및 권익 보호 등을 지원하는 장소로 1979년까지 활용됐다. 그러나 단원들이 점차 연로하고 재정적으로 건물을 유지하기 어려워지면서 1979년 해당 건물을 매각했다. 이후 해당 건물은 임대주택 등으로 활용돼다가 2020년 현지 부동산 개발업체가 인수해 2021년부터 철거 절차를 추진했다. ​해당 건물은 당시 본부를 흥사단의 ‘단’ 이 있는 장소라는 의미에서 '단소'(團所)로 불렸다. 해당 건물은 목조주택이었는데 당시에 유행했던 공예 양식으로 지어졌다. 공예양식이란 1800년대 후반부터 영국에서 시작된 새로운 조류의 예술조류다. 기존의 순수예술이 주로 박물관이나 왕실, 부유층 등 극히 한정된 공간과 계층에서만 향유할 수 있었던 것에 반해 공예기법은 일반인들도 일상공간에서 접할 수 있는 생활예술작품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하지만 해당 건물 부지에서 부동산개발업체가 철거 추진하면서 미약하게 남은 역사 흔적마저도 아예 소실될 위기에 처할 뻔했다. 이를 막기 위해 흥사단, 도산안창호기념사업회, 대한인국민회 기념재단 등이 건물을 보존하기 위한 위원회를 구성했다. 여와 더불어 미국의 LA 관리단, 아시아태평양 섬 주민 역사보존협회'(APIAHP) 등 역사 보존 시만단체들이 힘을 보태어 LA시의 역사·문화기념물로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이들 단체들의 노력 덕분에 건물 철거 절차는 일시 정지됐다. 이에 지난해 5월 해당 건물을 소유했던 부동산개발업체가 LA 흥사단 지부에 건물 인수를 제의했고 보훈처가 업체와 협상을 진행, 이번에 매입하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 민병권 서경 기자​‘이순신 마지막’ 찾아냈다, 日서 나고 자란 이 사람이순신 이름에 정신이 번쩍지​난 2022. 12. 9일 오후 교토대(京都大)에서 만난 김문경 교토대 명예교수가 활짝 웃었다. “비과학적인 이야기 같지만 우연은 아닌 것 같다”며 2시간에 걸쳐 공을 들여 설명한 건 ‘대통력(大統曆)’. 대통력은 조선 시대 관에서 금속활자로 찍은 일종의 정부 달력(冊曆)인데, 임진왜란 당시 서애 류성룡(1542~1607)이 이 달력을 일기장처럼 사용한 게 있었다. 그래서 지금은 이를 ‘유성룡비망기입대통력’으로 부른다. 이 달력 일기장이 최근 일본서 발견돼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 문화재 반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김 교수다. 지난 9일 김문경 교토대 명예교수가 자신이 연구하던 교토대 인문학연구소 앞에서 서애 류성룡의 기록이 담긴 달력인 '대통력'반환 과정을 알려주고 있다. 교토=김현예 특파원 / 환수된 서애 류성룡의 대통력.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사망하기 직전 모습이 적혀 있는데, 붉은 점선으로 표시된 부분이 이순신을 일컫는 ‘여해’다. 연합뉴스​지난 2020년 5월. 교토 고서점조합이 봄 경매 목록을 김 교수에게 보내왔다. 중국 문학을 연구해온 그의 눈에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그냥 ‘대통력’이었다. 여기엔 1600년 6월 5일 기록으로 ‘보고에 보니 강항(姜沆·정유재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의병장)이 일본에서 왔다고 한다’라고 쓰여 있었다. 금액은 228만엔(약 2180만원)이었다. ​선조실록을 찾아보니 같은 내용이 있었다. 관심이 쏠렸지만, 코로나19 봉쇄 상황이라 움직이지 못했다. 그리고 일 년 뒤인 2021년 가을, 도쿄(東京) 고서점 경매 목록에서 또 같은 책을 발견했다. 이번에도 코로나19로 인해 가보지 못한 채 아는 고서점 주인을 통해 수소문해보니 팔리지 않았다는 답만 들었다. ​잊고 지냈던 그 대통력이 다시 눈에 띈 건 지난 4월. 교토에서 봄맞이 고서적 경매가 열려 찾았는데, 책 한 권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앞서 두 차례나 정보를 접했던 대통력이었다. 경매 목록에 없었던 터라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양해를 구하고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살펴보는데 이순신 장군의 자인 여해(汝諧)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초서로 쓰여있었지만 ‘내가 파면됐다는 것을 듣고 여해가 한탄했다’는 문장이 보였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 순간부터 이 대통력에 나온 일자별 특이 행적과 동선을 외우다시피 머릿속에 담았다. ​집으로 돌아와 기록을 비교했다. 류성룡 연보와 대통력에 기록된 주요 행적이 모조리 일치했다. 소장 중이던 류성룡 도록 필체와도 비교했다. 필적전문 지인이 필체가 같다는 의견을 주면서 이 책이 류성룡 선생의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김 교수는 그길로 국외소재문화재단에 연락을 넣었고, ‘탄환을 맞고 전사했다’는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을 기록한 류성룡의 대통력은 그렇게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래픽=김경진 중앙일보 기자​2005년 충무공 김시민(1554∼1592) 장군 공신교서를 일본 고서점상에서 발견해 알린 이도 김 교수다. 경매에 나온 이 책이 알려지면서 국내에 환수 운동이 일었다. 김 교수는 후지스카 치카시(藤塚隣) 전 경성제국대학교 교수가 수집한 추사 김정희 관련 자료를 모아 교토 고려미술관에 기탁하기도 했다. ​“대통력 반환이 운명인 듯”김 교수는 일본서 태어나 자랐다. 그의 부친 고향은 전남 해남 문내면 선두리. 울돌목이 있는 바로 그곳이다. 마을엔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비(보물 제503호)가 있었는데, 일제강점기 때 강제 철거됐다. 김 교수는 “당시 총독부가 있던 광화문 경복궁 뒤뜰에 비석이 쓰러져 있는 것을 부친이 발견해 미군에 연락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큰아버지께서 지역 분들과 농악대를 조직해 전국 순회를 하면서 돈을 모아 대첩비가 제자리를 찾았고, 비각을 지키는 어르신들 역시 같은 문중”이라고 자랑스러워했다. ​임진왜란과의 연결점은 또 있다. 금산 전투에서 의병 700명이 1만5000명의 왜군과 맞서 싸우다 모두 전사했는데, 당시 한 분이 김 교수의 조상으로, 그가 21대손이라고 한다. 김 교수는 이를 놓고 “이번 대통력 반환이 운명인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며 웃었다. 그는 “류성룡 종가에서 14권의 대통력을 보유하다 일제강점기 등을 거치며 현재 5권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며 “일본 어딘가에서 나머지 대통력이 다시 발견되길 바란다”고 말했다.​묵묵히 힘쓰는 문화재 지킴이들김 교수처럼 일본에선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한국 문화재 수집과 반환에 묵묵히 힘쓰는 이들이 있다. 도쿄에서 고서점을 운영하는 재일동포 김강원 씨는 올해 ‘백자청화김경온묘지(白磁靑畵金景溫墓誌)’ 등을 직접 사들여 기증했다. 후손들에게 무상으로 돌려줬다. ​교토대에서 차로 30분 떨어진 고려미술관의 정희두 이사장도 문화재 지킴이로 나서고 있다. 지난 9일 찾아간 이곳에선 ‘조선왕조의 백자와 수묵화’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정 이사장은 미술관을 세운 고(故) 정조문 씨의 장남이다. 독립운동가 아들로 태어난 정조문 선생은 6세에 일본으로 건너와 막노동을 하다 파칭코로 큰돈을 벌었다. 이후 일본 곳곳에 있던 우리 문화재 1700여 점을 수집해 지난 1988년 미술관을 세웠다. 국보급 유물을 비롯해 흥선대원군 묵란, 유네스코 세계의 기록 유산에 오른 조선통신사 행렬도 등이 이곳에 있다. ​부친의 뒤를 이어 혼자서 미술관을 운영하고 있는 정 이사장은 “항상 적자 상태인 미술관의 운영 걱정도 크지만 내년 미술관 설립 35주년을 맞아 많은 사람에게 우리 문화재를 알릴 수 있도록 전시회를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미술관 한편엔 소장품 보수와 관리를 위한 모금함이 마련돼 있었다. (김현예 중앙일보 도쿄 특파원) 교토에 자리잡고 있는 고려미술관. 고 정조문 선생이 일본 전역에서 수집한 우리 문화재 1700여 점이 이곳에 있다. 지난 9일 조선왕조의 백자와 수묵화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교토=김현예 특파원​일본 속 한국, 긴 인연의 증거들​요​즘 2023.2.일본 도쿄에는 한국 관광객이 정말 많다. 제법 알려진 관광지에 가면 어김없이 한국말을 들을 정도다. 일본 정부 통계에 따르면 1월 일본을 찾은 외국인은 149만7000명, 이 중 한국인이 56만5000명(37.7%)으로 가장 많았다. 10명 중 4명 가까이가 한국인이라는 말이니 도쿄가 아닌 다른 곳도 비슷한 상황이 아닐까 싶다.​韓 석등으로 관람객 맞는 미술관도쿄 日민예관 설립자인 야나기韓 전통문화 세계적 우수성 역설일제 약탈의 상흔 속 ‘선한 동거’ ​오랜만에 나선 관광 중에 일본 곳곳에 스며든 한국문화를 접하는 일도 있을 것이다. 지하철에 휴대전화로 한국 드라마를 보는 일본인, 편의점에 진열된 한국 제품, K팝·드라마에 열광하는 드라마 속 등장 인물 등을 직접 확인하며 일본에서 한국문화가 일상화 수준에 이른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해 봄직도 하다. ​비교적 잘 드러나고 많이 알려져 있기도 한 이런 문화와 달리 좀 더 세심히 살피면 드러나는, 우리의 ‘의도적인’ 관심이 필요한 일본 속 한국문화가 있다. 일본 곳곳에 있는 한국 문화재들이다. 주요 관광지의 일부로 자리 잡고 있는 것도 있어 일본 여행 일정을 짤 때 방문지로 고려해 볼 만도 하다 싶어 몇 곳을 소개해 본다.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최근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끌면서 관심이 높아진 곳이 애니메이션의 배경인 가마쿠라다. 고도쿠인(高德院)의 가마쿠라 대불(大佛)은 가마쿠라 관광에서 빼놓을 수 없다. 일본 국보로 지정된 이 빼어난 불상의 뒤편 정원에 간게쓰도(觀月堂·관월당)라는 건물이 있다. 고도쿠인은 간게쓰도를 “서울의 조선왕궁에 있었던 것인데 1924년 (일본 기업가인) 스기노 기세이씨가 기증한 것”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 건물이 조선궁궐 건축이 맞다면 어떻게 이런 기묘한 동거가 시작된 것일까, 라는 의문을 떠올려 볼 만하다. ​도쿄 미나토구에 있는 네즈미술관은 뛰어난 전시품은 물론 아름다운 일본식 정원을 만날 수 있어 매력적이다. 이 미술관이 입구에 세워 둬 관람객이 처음 접하는 전시품은 한국의 장명등(長明燈·묘지, 건물의 마당 등에 불을 밝힐 수 있도록 세운 석등)이다. 다음달 31일까지 진행되는 기획전 ‘불구(佛具)의 세계’에는 한국 문화재 4점이 전시되어 있다. 그중 불상을 안치하는 용도로 사용했던 조선 초기 분청자기는 전시대를 따로 설치해 미술관 스스로 특별한 작품으로 평가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이곳은 세계적 예술 가치를 인정받는 고려 불화의 주요 소장처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가장 추천하고 싶은 곳은 도쿄 메구로구의 일본민예관이다. 조용한 주택가에 자리 잡은 일본민예관 건물은 차곡차곡 잘 깃든 오랜 시간이 느껴져 보는 이의 마음을 넉넉하게 한다. 설립자인 야나기 무네요시가 일본을 포함해 동아시아 각국에서 수집한 공예품을 소장, 전시하고 있는데, 약 1600점의 한국 문화재가 있는 곳이라 우리에겐 각별하다. 1916년 지인이 선물한 조선 도자기에 매료된 야나기는 1924년 조선민족미술관을 설립하는 등 세상을 뜰 때까지 한국 전통문화의 세계적 우수성을 역설했던 인물이다. 그가 1921년 발표한 글에는 한 세기가 지난 지금의 한류와 한국어 열풍을 예언이라도 한 듯한 부분이 있어 흥미롭다. ​“여러분 가운데서 셰익스피어와 같은 대문호가 나온다면 세계의 모든 사람은 앞을 다투어 조선어를 연구할 것이다.”​일본에 있는 한국 문화재를 볼 때면 두 나라의 길고, 깊은 인연을 생각하게 된다. 가장 먼저 떠올리는 건 역시 일제강점이라는 악연이다. 그 시절은 지금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많은 과제를 남기고 있어 양국 관계의 걸림돌이 될 때가 많다. 한국 문화재 중에서도 당시 공공연하고, 광범위하게 자행된 약탈의 결과로 지금까지도 일본에 남아 있는 것들이 적지 않다. 동시에 일본민예관처럼 우리가 좀 더 관심을 주고 소중하게 기억해야 할 인연이 있다. 그 엄혹한 시절에도 양국이 진정한 우정을 바탕으로 공생하기를 꿈꿨던 일본인의 선한 의지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멀고도 가까운 일본’이 일본 속 한국 문화재에 선명하다. - 강구열 세계일보 도쿄 특파원​대한제국공사관 6곳중 3곳 안내쵸지도 없어, 공동주택도​​​국외소재문화재재단 내부 보고서 1893년 일본 도쿄 주일 조선공사관의 당시 모습. 국회도서관 제공​“국가는 주권이 없어졌고 인간은 평등을 상실하여 모든 교섭은 치욕이 망극하다. 어찌 피 끓는 자가 참을 수 있는 일인가.” 이한응 열사1​905년 5월 12일 영국 런던 주영 대한제국공사관. 당시 영국 주재 외교관이었던 이한응 열사(1874∼1905)는 국권이 상실돼가는 상황에 비통함을 참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가 남긴 유서는 국내에도 알려지며 이후 항일운동의 도화선이 되기도 했다. ​이 열사가 떠난 지 117년. 그가 순국한 주영 대한제국공사관은 현재 36가구가 거주하는 공공임대아파트로 바뀌었다. 런던 켄싱턴구 얼스코트 트레보버 4번지에 있는 이 건물은 별다른 안내석도 없다. 공사관은커녕 이 열사의 순국 현장이란 사실조차 알 수 없다. ​대한제국이 나라를 대표해 외국에 설치했던 해외 공관 6곳의 현재 실태가 모두 확인됐다. 2012년 매입한 주미 대한제국공사관 등 일부는 일반에 소개된 적이 있지만 전체 공사관이 현재 어떤 상태에 있는지 알려진 건 처음이다. 문화재청 산하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1887년 주일 공사관을 시작으로 미국과 영국, 러시아, 프랑스, 청나라(중국)에 설치된 공사관 실태를 파악한 결과 6곳 가운데 3곳이 안내석도 없는 상태이며 한 곳은 건물이 아예 철거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2022. 8. 8일 밝혔다.영국 런던의 옛 주영 대한제국공사관 건물은 영구임대주택으로 바뀌어 옛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일본독립기념관 제공 / 중국 베이징의 주청 대한제국공사관 터로, 1915년 옛 건물이 철거되고 현재 3층짜리 은행 건물이 들어서 있다.​재단 내부 보고서 ‘재외공관 건축물의 문화재적 가치 검토’에 따르면 복원공사를 거쳐 2018년 재개관한 미국 워싱턴 소재 주미 공사관에 안내석이 세워졌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와 프랑스 파리에 있던 공사관에도 안내석은 있지만 주러 공사관은 현재 민간아파트로, 주불 공사관은 연립주택으로 각각 바뀌었다. ​​일본 도쿄 도심에 있었던 주일 대한제국공사관은 해외 공관 가운데 가장 먼저 세워졌지만 당시 어디에 자리 잡았는지 특정 짓지 못하고 있다. 최근 일본 국회도서관 등에서 공사관의 옛 지명주소와 당시 사진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긴 했으나 별다른 후속 연구가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재단 관계자는 “공사관이 여러 차례 이동했고 해당 건물이 철거됐다는 기록이 있긴 하지만 명확하게 확인된 건 아니다”라며 “여러 사료를 통해 추적이 가능한 만큼 기초 고증 연구가 시급하다”고 말했다.주청 대한제국공사관도 열악한 사정은 엇비슷하다. 1903년 중국 베이징 둥자오민샹(東交民巷) 거리에 설치돼 1905년까지 운영했던 주청 공사관은 1915년 건물 자체가 헐렸다. 현재는 3층짜리 붉은 벽돌 건물이 지어졌고 은행이 들어서 있다. 하지만 주청 공사관이었음을 알리는 안내석도 없고 후속 연구도 미진하다. 그나마 최근 외교부에서 한중 수교 30주년을 맞아 관련 연구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학계에서는 대한제국공사관이 가진 역사적 가치가 큰 만큼 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종헌 배재대 건축학과 교수는 “대한제국공사관은 세계 열강에 우리의 주권을 드러낸 첫 시도라는 의미가 있다”며 “이런 공간에 안내석조차 설치돼 있지 않다는 건 대한제국 외교사에 대한 기초 연구가 미진한 탓”이라고 지적했다.​ 재단 보고서에서는 당시 공사관들이 불리한 국제 정세에도 고군분투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일제에 외교권을 빼앗기며 공사 6곳이 모두 폐쇄될 때까지 대한제국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애썼다. 사료에 따르면 공사 건물의 옥상에는 국기게양대를 만들어 태극기를 게양했으며, 입구 정문에도 태극기 문양을 새겼다고 한다. 공사관 내부에도 태극기를 달고 전통 공예품을 설치해 한국 문화를 알리려 노력했다. ​윤소영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연구위원은 “대한제국공사관에는 망국의 위기에도 주권을 지키려 분투한 독립운동가들의 역사가 서려 있다. 세계 곳곳에 남아 있는 그 흔적을 우리가 지키고 기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소연 동아일보 기자)​‘화조자수 10폭 병풍’은 어쩌다 미국으로 건너갔을까1884년 미국 선교사 호러스 알렌이 고종에게 하사받아 스미스소니언박물관에 기증한 ‘화조자수 10폭 병풍’ 중 일부(왼쪽 사진). 영국박물관은 조선 왕실이 1912년 한국을 방문한 영국의 스탠리 스미스 목사에게 선물한 ‘백자태호’(오른쪽 사진)를 소장하고 있다. 미국 스미스소니언박물관·영국박물관 제공미​국 스미스소니언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화조자수 10폭 병풍’. 조선 왕실 궁녀들이 정성으로 수놓은 이 병풍은 어쩌다 이역만리로 건너갔을까. 한반도의 고단한 역사 탓에 짐짓 약탈문화재를 떠올리기 쉽지만 여기엔 아름다운 사연이 한 땀 한 땀 배어 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해외대학 협업해외소재 문화재 반출경로 추적일부 문화재 반환 뼈대 될 수도 ​호러스 알렌(1858∼1932)은 1882년 조미수호조약 이후 조선을 방문한 미국인 의사이자 선교사. 그는 1884년 갑신정변 때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민영익(1860∼1914)을 치료해 목숨을 구했다. 고종은 명성왕후의 조카인 민영익을 살려준 알렌에게 감사하는 뜻에서 이 병풍을 하사했다. ​문화재청 산하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의 여정을 추적하는 대대적인 연구에 나선다. 재단 실태조사부는 “미 다트머스대, 영국 런던대 동양아프리카학대학(SOAS)과 협업해 영국박물관과 스미스소니언박물관, 보스턴미술관 등이 소장한 한국 문화재에 대한 출처 연구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2012년 설립돼 올해로 10주년을 맞은 재단이 그간 국외 문화재 현황 파악 등에 초점을 맞춘 연구를 해왔다면, 이번 출처 연구는 본격적으로 문화재가 흘러간 역사를 짚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 버전인 셈이다. ​보스턴미술관이 소장한 고려청자 ‘청자상감국화문발(靑磁象嵌菊花文鉢)’은 고종이 조선의 미국수호통상사절단을 이끄는 역할을 맡았던 미국인 퍼시벌 로웰(1855∼1916)에게 하사했다는 기록이 있다. 바로 조선 외교관이던 윤치호(1865∼1945)가 1884년 2월 20일 쓴 일기에는 ‘임금이 로웰 군에게 하사한 물건을 전하고 공사관으로 돌아왔다’는 내용이 나온다. 재단 측은 “과거 신문과 관료 일기, 왕실 문헌뿐 아니라 해외 경매 거래증서 등 국내외 사료를 꼼꼼히 확인해 우리 문화재의 반출 경로를 추적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출처연구는 문화교류사 파악은 물론이고 향후 일부 문화재를 반환 받을 수 있는 뼈대가 되어줄 수도 있다. 독일분실미술품재단은 2008년부터 10년에 걸쳐 나치 독재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유대인 소유주에게 약탈한 문화재 1200여 점에 대한 출처 연구를 진행했다. 약 10%의 출처를 명확히 밝혀내는 성과를 거뒀으며, 33점은 나치 약탈을 법적으로 입증해 원소유주에게 돌려주는 협상도 진행하고 있다. ​재단 관계자는 “일단 개항기와 대한제국 시기에 넘어간 문화재가 대상이나, 향후에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시기로 연구 영역을 확장해 나가겠다”며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의 반출 경로를 데이터베이스(DB)로도 구축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소연 동아일보 기자)​양혜규 브라질서 남미 최초 개인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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